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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한국사|왕건의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광종·성종까지 한눈에

by 책읽는국어쌤🤗 2026. 8. 28.

초등 한국사|후삼국 시대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

 

초등 한국사|후삼국 시대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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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읽는국어쌤 주미쌤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통일 신라가 힘을 잃어 가면서

후백제의 견훤, 후고구려의 궁예, 그리고 왕건이 등장하는 후삼국 시대를 살펴보았습니다.

 

후삼국 시대는 나라가 다시 나뉘고 전쟁이 이어지면서 백성들의 삶도 매우 불안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왕건입니다.

오늘은 왕건이 어떻게 고려를 세웠는지, 후삼국을 어떻게 통일했는지,

그리고 고려가 어떻게 안정된 국가로 자리 잡아 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

왕건은 처음부터 왕이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는 궁예의 부하였습니다.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처음에는 백성들의 기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하들을 의심하고 함부로 벌을 주는 등 점차 폭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궁예는 신하들과 백성들의 믿음을 잃게 됩니다.

 

반면 왕건은 전쟁을 잘 이끄는 장수였을 뿐 아니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에도 능했습니다.

이런 왕건을 신뢰한 신하들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918년,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정했습니다.

 

🏯 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을까?

‘고려’라는 이름에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왕건은 옛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또 수도를 철원에서 자신의 근거지였던 송악, 지금의 개성으로 옮겼습니다.

송악은 교통이 편리하고 상업 활동에도 유리한 곳이었습니다.

 
💡 한눈에 정리
  • 918년 : 왕건이 고려 건국
  • 수도 : 송악
  • 나라 이름의 의미 : 고구려 계승

 

🤝 왕건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왕건이 고려를 세웠다고 해서 곧바로 후삼국이 통일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여전히 고려·후백제·신라가 함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무조건 전쟁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지방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던 호족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호족이란?

호족은 지방에서 많은 땅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세력입니다.
통일 신라 말에는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각 지역의 호족들이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왕건은 이런 호족들과 적대하기보다 협력하려 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혼인 정책입니다.
왕건은 여러 호족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어 서로 협력하도록 했습니다.

또 자신에게 항복한 사람들을 함부로 벌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왕건의 이런 포용 정책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신라는 스스로 고려에 항복하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더 이상 나라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신라는 고려에 스스로 항복합니다.

 

왕건은 경순왕과 신라 왕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은 대우를 해 주며 신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건 정치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적을 없애는 것보다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정치를 펼쳤던 것입니다.

 

⚔️ 후백제의 내부 갈등

후삼국 통일의 마지막 상대는 후백제였습니다.

 

그런데 후백제에서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견훤의 아들들이 왕위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고, 결국 견훤은 자신의 아들 신검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놀랍게도 견훤은 자신이 오랫동안 싸워 왔던 고려로 들어가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왕건은 견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936년, 고려는 후백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마침내 왕건은 후삼국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 후삼국 통일 과정
918년 고려 건국
935년 신라 항복
936년 후백제 멸망
후삼국 통일 완성

 

🌏 왕건의 북진 정책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뒤 북쪽 지역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쪽으로 영토를 넓혀 가는 북진 정책을 펼쳤습니다.

 

또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한 뒤 고려로 들어온 발해 유민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통해 고려가 고구려와 발해의 전통을 이어받으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

고려사에 실린 훈요 10조 중 9조, 10조 내용
<고려사>에 실린 훈요 10조 중 9조, 10조 내용

 

왕건은 죽기 전에 후대의 왕들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남겼습니다.

바로 훈요 10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려를 오래 지키려면 이것만은 꼭 기억하라.”

 

라는 왕건의 정치적 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훈요 10조에는 불교를 중요하게 여기고, 나라의 전통을 지키며,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 광종, 왕의 힘을 키우다

왕건 이후 고려의 왕들은 나라를 더욱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중 꼭 기억해야 할 왕이 광종입니다.

광종은 힘이 강해진 호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대표적인 정책이 노비안검법과 과거제입니다.

노비안검법

노비안검법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조사하여 다시 양인으로 풀어 주는 제도입니다.

당시 호족들은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노비가 줄어들면 호족의 경제력과 군사력도 약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왕의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쌍기의 건의로 실시한 과거제

광종은 후주에서 온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제를 실시했습니다.

과거제는 시험을 통해 관리가 될 사람을 뽑는 제도입니다.

 

이전에는 힘 있는 호족 집안 출신이 관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과거제를 실시하면서 왕은 시험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직접 뽑아 관리로 등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호족의 힘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 광종 핵심
노비안검법 ➔ 호족의 힘 약화
쌍기의 건의 ➔ 과거제 실시 ➔ 새로운 인재 등용
결과 ➔ 왕권 강화

 

📚 성종, 고려의 제도를 정비하다

그다음 중요한 왕은 성종입니다.

성종은 유교를 바탕으로 나라의 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했습니다.

 

특히 지방에 12목을 설치하고 중앙에서 관리를 보내 지방을 직접 다스리게 했습니다.

유교 교육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광종이 왕의 힘을 키웠다면, 성종은 그 힘을 바탕으로 고려의 통치 체제를 정비한 왕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고려 성종 때의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성종 때의 지방 행정 구역

 

 

✏️ 왕건·광종·성종 한눈에 비교

핵심 내용
태조 왕건 고려 건국, 후삼국 통일, 호족 포용, 북진 정책
광종 노비안검법,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 실시, 왕권 강화
성종 유교 정치, 12목 설치, 통치 제도 정비
 

이렇게 기억하면 쉽습니다.

 

왕건은 나라를 세우고,
광종은 왕의 힘을 키우고,
성종은 나라의 제도를 정비했다.

 

💡 이것만은 꼭 기억해요!

✅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웠습니다.
✅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려 했습니다.
✅ 왕건은 호족을 포용하고 혼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 935년 신라가 고려에 항복했습니다.
✅ 936년 후백제가 멸망하면서 후삼국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실시했습니다.
✅ 광종은 쌍기의 건의를 받아 과거제를 실시했습니다.
✅ 성종은 유교를 바탕으로 고려의 통치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 주미쌤의 역사 한마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단순히 전쟁을 잘하는 능력만은 아니었습니다.

신라의 경순왕을 받아들이고, 한때 자신과 싸웠던 견훤까지 품었던 모습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세우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건이 고려의 문을 열었다면, 광종은 왕의 힘을 키우고 성종은 나라의 제도를 정비하면서

고려를 조금씩 안정된 국가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려는 더 큰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북쪽에는 거란과 여진이라는 강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고 말로 땅을 얻어 낸 서희의 외교 담판,

그리고 거란군을 물리친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중심으로 고려와 주변 나라들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