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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한국사

초등 한국사|후삼국 시대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

by 책읽는국어쌤🤗 2026. 8. 25.

후삼국시대 후고구려 후백제 신라 지도

안녕하세요. 책읽는국어쌤 주미쌤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통일 신라의 문화와 불국사, 석굴암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통일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오랫동안 한반도 남쪽을 다스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왕위를 둘러싼 귀족들의 다툼이 심해졌고, 지방에서는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이 틈을 타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에는 다시 세 나라가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찾아옵니다.

바로 후삼국 시대입니다.

오늘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후삼국 시대는 왜 시작되었고, 견훤과 궁예는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세웠을까요?

 

이번 시간에는 후삼국 시대의 시작과 견훤의 후백제, 궁예의 후고구려를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 후삼국 시대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경쟁했던 삼국 시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통일 신라 말기에 다시 세 나라가 등장합니다.

바로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입니다.

이 시기를 옛 삼국 시대와 구별하기 위해 후삼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후(後)’는 뒤, 나중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후삼국 = 삼국 시대보다 뒤에 다시 세 나라가 경쟁했던 시대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옛 백제와 고구려가 그대로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신라 말기에 새롭게 성장한 세력들이 옛 백제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을 내세우며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견훤과 궁예입니다.

🏚️ 신라 말, 지방에서 호족이 성장하다

통일 신라 말기에는 왕의 힘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왕위를 차지하려는 귀족들의 다툼이 계속되면서 왕이 자주 바뀌었고, 중앙 정부는 지방까지 제대로 다스리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지방에는 이미 많은 땅과 군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호족이라고 합니다.

💡 호족이란?

호족은 신라 말기에 지방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자기 지역을 다스리던 세력입니다.

쉽게 말하면,

 

왕의 힘이 약해지자 지방에서 자신의 힘으로 지역을 지키고 다스리던 사람들

 

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호족들은 성을 쌓고 군사를 거느리기도 했습니다. 중앙 정부보다 지역의 호족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진 곳도 생겨났습니다.

백성들의 생활도 어려워졌습니다.

흉년이 들고 세금 부담까지 커졌지만 나라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러 지역에서 농민들이 들고일어났고 신라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졌습니다.

왕의 힘은 약해지고, 지방의 호족은 강해지고, 백성들의 불만은 커지는 상황.

이러한 신라 말의 혼란 속에서 견훤과 궁예 같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 견훤, 후백제를 세우다

후삼국 시대를 열었던 대표적인 인물은 견훤입니다.

견훤은 처음부터 왕이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 신라의 군인이었습니다.

견훤은 신라의 군인으로 활동하면서 신라가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독자적인 세력을 키웠습니다.

마침내 900년, 견훤은 완산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바로 후백제입니다.

📌 꼭 기억하기

견훤 → 후백제 → 900년

완산주는 오늘날의 전주 지역입니다.

견훤은 옛 백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 갔습니다.

🪱 견훤에게는 왜 ‘지렁이 이야기’가 전해질까?

견훤의 출생과 관련해서는 아주 신기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견훤의 어머니에게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어느 날 그 남자의 옷에 실을 꿴 바늘을 꽂아 두었습니다.

다음 날 실을 따라가 보니 바늘이 꽂혀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지렁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견훤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견훤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견훤의 출생 이야기에는 지렁이 설화가 함께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실제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옛 기록에는 왕이나 영웅이 태어날 때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나 박혁거세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건국 신화나 출생 설화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견훤에게도 특별한 출생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을까요?

견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운 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왕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신비로운 출생 이야기가 전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견훤의 지렁이 이야기도

 

“견훤은 처음부터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전해진 설화로 볼 수 있습니다.

❓ 견훤은 왜 ‘후백제’를 세웠을까?

백제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견훤은 왜 다시 ‘백제’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요?

견훤은 자신이 옛 백제를 이어받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옛 백제 지역 사람들에게는 백제에 대한 기억과 정서가 남아 있었습니다.

견훤은 그 마음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후백제라고 정했습니다.

즉, 후백제라는 이름에는

 

“우리가 옛 백제를 다시 이어 가겠다.”

 

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 강한 나라로 성장한 후백제

견훤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넓혔습니다.

군사력도 강했습니다.

후백제는 주변 지역을 공격하며 영토를 넓혔고, 통일 신라에도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특히 후삼국 시대 초기에는 견훤의 후백제가 매우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훗날 견훤은 군대를 이끌고 신라의 수도 경주까지 공격합니다.

한때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가 이제 새로운 나라의 공격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궁예, 후고구려를 세우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다음 해인 901년, 또 하나의 나라가 등장합니다.

바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입니다.

📌 꼭 기억하기

궁예 → 후고구려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 왕실과 떨어져 살게 되었고, 이후 여러 세력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자신의 힘을 키웠습니다.

궁예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세력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 궁예는 왜 한쪽 눈을 잃었을까?

궁예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쪽 눈을 잃은 모습을 떠올립니다.

여기에도 궁예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집니다.

궁예가 태어났을 때 신라 왕실에서는 그의 출생을 좋지 않게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궁예가 훗날 나라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왕이 아기를 없애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궁예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아기 궁예를 높은 곳에서 던졌는데, 유모가 아래에서 궁예를 받아 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유모의 손가락이 궁예의 눈을 잘못 건드려 한쪽 눈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정확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내용이라기보다는 후대에 전해지는 궁예의 출생 설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궁예라는 인물을 어떻게 기억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궁예는 신라 왕족 출신이면서도 신라에 대한 강한 원망을 가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린 시절 신라 왕실에 의해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궁예가 왜 신라에 맞서 새로운 나라를 세웠을까?”

라는 질문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역사 속 설화는 사실과 구분해서 읽어야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한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 궁예는 왜 ‘후고구려’를 세웠을까?

견훤이 백제를 이어받는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궁예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내세웠습니다.

옛 고구려는 한반도 북쪽과 만주 지역까지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강한 나라였습니다.

궁예는 옛 고구려의 이름을 이용해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세운 나라의 이름을 후고구려라고 정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옛 나라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제를 다시 세우겠다.”

“고구려를 다시 이어 가겠다.”

이런 주장은 새로운 나라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후고구려 → 마진 → 태봉

궁예의 나라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라의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후고구려였지만 이후 궁예는 나라 이름을 마진,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습니다.

따라서 교과서에는 다음 세 이름이 모두 등장합니다.

 

후고구려 → 마진 → 태봉

 

아이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헷갈립니다.

후고구려가 사라지고 마진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생긴 뒤, 다시 태봉이라는 나라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모두 궁예가 다스리던 같은 나라이고 이름만 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기억하면 훨씬 쉽습니다.

🗺️ 신라·후백제·후고구려, 다시 세 나라가 경쟁하다

이제 한반도에는 세 개의 큰 세력이 자리 잡았습니다.

남동쪽에는 기존의 신라,

서남쪽에는 견훤의 후백제,

북쪽에는 궁예의 후고구려가 있었습니다.

이 세 나라가 서로 경쟁하던 시대가 바로 후삼국 시대입니다.

✏️ 한눈에 정리하기

나라인물핵심 내용

신라 기존 신라 왕실 나라의 힘이 점점 약해짐
후백제 견훤 900년 건국
후고구려 궁예 901년 건국, 이후 마진·태봉으로 국호 변경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신라 말 나라가 혼란해지자 견훤이 900년 후백제를 세우고, 궁예가 901년 후고구려를 세우면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 그런데 궁예의 곁에 한 사람이 있었다

궁예가 세력을 넓히는 동안 그의 부하 가운데 뛰어난 장군 한 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왕건입니다.

왕건은 송악 지역의 유력한 호족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송악은 오늘날의 개성입니다.

왕건의 집안은 바닷길을 이용한 무역을 통해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건은 궁예의 부하가 되어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바다를 이용한 전투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나라가 커질수록 궁예의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궁예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신하들을 함부로 벌했습니다.

궁예를 따르던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후삼국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궁예의 장군이었던 왕건이 새로운 왕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 초등 한국사 핵심 정리

오늘 배운 내용은 다섯 가지로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신라 말 왕의 힘이 약해지고 지방의 호족이 성장했습니다.

둘째, 견훤은 900년 후백제를 세웠습니다.

셋째, 궁예는 901년 후고구려를 세웠습니다.

넷째, 궁예는 후고구려의 이름을 마진, 태봉으로 바꾸었습니다.

다섯째, 신라·후백제·후고구려가 경쟁하던 시기를 후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쉽게 외우면,

 

견훤은 후백제!

궁예는 후고구려!
신라와 함께 후삼국!

 

여기에 하나를 더 기억해 봅시다.

 

견훤의 지렁이 이야기와 궁예의 한쪽 눈 이야기는 인물에게 특별함을 더해 주기 위해 전해진 설화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역사 공부입니다.

💡 조금 더 생각해 보기

후삼국 시대를 공부할 때 견훤과 궁예의 이름만 외우는 것보다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왜 하필 신라 말기에 새로운 나라들이 등장했을까요?

나라의 힘이 강했다면 한 사람이 갑자기 군사를 모아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 말에는 왕의 힘이 약해지고 귀족들은 서로 다투었습니다. 지방의 호족은 강해졌고 백성들의 불만도 커졌습니다.

즉,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신라 사회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누가 무엇을 했는가?’

뿐만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외워야 할 역사가 아니라 흐름이 보이는 역사가 됩니다.

🐌 주미쌤의 역사 한마디

통일 신라는 삼국을 하나로 합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지만 영원히 강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왕의 힘이 약해지고 귀족들의 다툼이 계속되자 지방의 호족들이 성장했고, 어려운 생활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의 불만도 커졌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견훤은 후백제, 궁예는 후고구려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다시 세 나라가 경쟁하는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견훤에게는 지렁이와 관련된 신비로운 출생 이야기가, 궁예에게는 어린 시절 한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런 설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옛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인물들을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고, 그들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로 남겼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역사를 재미있게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후삼국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궁예의 곁에는 전쟁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가던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바로 왕건입니다.

궁예는 왜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의 마음을 잃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궁예의 장군이었던 왕건은 어떻게 새로운 나라 고려를 세우게 되었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918년 왕건의 고려 건국과 936년 후삼국 통일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