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한국사] 발해는 정말 고구려를 이은 나라였을까? 초등 한국사 발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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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읽는국어쌤’ 주미쌤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삼국 통일 이후 한반도 남쪽의 통일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발전한 남북국 시대를 살펴보았습니다.
나라의 모습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도 달라집니다.
통일 신라는 불교가 더욱 널리 퍼지면서 불국사와 석굴암 같은 뛰어난 불교 예술을 남겼고,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이어받으면서 주변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문화는 이름만 외우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정혜공주 묘, 정효공주 묘….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면서 통일 신라와 발해의 문화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 오늘의 핵심 질문
통일 신라와 발해는 어떤 문화를 발전시켰을까요?
1. 통일 신라, 불교가 더욱 발전하다
통일 신라에서는 불교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삼국 시대에는 불교가 주로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통일 신라에 이르러서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승려가 활약했습니다.
원효는 어려운 불교의 가르침을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왕실이나 귀족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퍼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한 뒤 신라로 돌아와 화엄종을 발전시켰습니다.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절을 세워 불교를 널리 알렸습니다.
또한 통일 신라의 승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혜초는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왕오천축국전 》 이라는 책에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통일 신라에서는 여러 승려의 활동을 통해 불교가 더욱 발전했고, 신라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쉽게 기억해요!
원효 → 백성들에게 불교를 쉽게 알림
의상 → 화엄종 발전
혜초 → 인도 여행, 《왕오천축국전》
2. 불교 예술의 꽃, 불국사와 석굴암
통일 신라의 불교문화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당시 만들어진 문화유산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그런데 불국사와 석굴암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김대성은 왜 불국사와 석굴암을 만들었을까?
《삼국유사》에는 통일 신라의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대성은 현재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 즉 오늘날의 석굴암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에는 불교의 윤회 사상과 부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불국사와 석굴암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라 통일 신라 사람들의 불교 신앙과 생각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3. 불국사는 왜 ‘부처의 나라’일까?
불국사의 이름에서 불국(佛國)은 ‘부처의 나라’를 뜻합니다.
통일 신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불교의 세계를 현실 속에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불국사에는 불교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가 건축물과 탑에 담겨 있습니다.
불국사에서 특히 유명한 문화재가 바로 석가탑과 다보탑입니다.
두 탑은 바로 옆에 서 있지만 모습은 무척 다릅니다.
석가탑은 장식이 많지 않고 단정하면서 균형 잡힌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보탑은 여러 모양의 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려 화려하고 복잡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른 두 탑을 나란히 세웠을까요?
4. 다보탑과 석가탑에 담긴 《법화경》 이야기
다보탑과 석가탑은 불교 경전인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석가모니가 사람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을 때
다보여래가 나타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참되다고 인정해 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불국사의 두 탑은 각각 다음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석가탑 → 석가모니
- 다보탑 → 다보여래
즉, 두 탑은 단순히 멋진 탑 두 개를 세운 것이 아니라 불교 경전 속 이야기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두 탑을 바라보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화려한 다보탑과 단정한 석가탑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불교 이야기를 함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5. 석가탑에는 ‘무영탑’ 이야기도 있어요
석가탑에는 또 하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바로 아사달과 아사녀의 무영탑 전설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탑을 만드는 석공 아사달에게는 아사녀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남편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연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석가탑을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의 무영탑이라고 부르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다만 꼭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기록이라기보다 후대에 전해진 전설입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야기로 기억하기
불국사·석굴암 → 김대성
다보탑 → 다보여래
석가탑 → 석가모니
석가탑의 또 다른 이야기 → 무영탑 전설
이렇게 연결하면 훨씬 기억하기 쉽습니다.
6. 석굴암, 돌로 만든 불교의 세계
이제 석굴암을 살펴볼까요?
석굴암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돌을 다듬어 쌓아 만든 인공 석굴입니다.
석굴 안에는 커다란 본존불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변에도 여러 불상과 조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단단한 돌에 사람의 표정과 옷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모습을 보면 당시 통일 신라의 조각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석굴암은 단순한 불상 하나가 아니라 건축과 조각, 불교 사상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그래서 불국사와 석굴암은 통일 신라 불교 예술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꼽힙니다.
7. 성덕대왕신종에도 뛰어난 기술이 담겨 있어요
통일 신라의 뛰어난 기술은 성덕대왕신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큰 종으로, 흔히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종의 표면에는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비천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크고 무거운 금속으로 이렇게 정교한 종을 만들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통일 신라의 금속 공예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밀레종에는 아이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지지만, 이 역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므로 전설과 실제 역사 자료는 구분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8. 불교뿐 아니라 유학과 교육도 발전했어요
통일 신라에서는 불교뿐 아니라 유학과 교육도 발전했습니다.
신문왕은 관리에게 필요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국학을 정비했습니다.
국학에서는 주로 유교 경전을 가르쳤습니다.
유학자 설총은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는 데 힘썼습니다.
또 통일 신라 말에는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해 관리를 뽑는 데 활용한 독서삼품과도 실시되었습니다.
당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최치원과 같은 학자도 활약했습니다.
따라서 통일 신라의 문화를 불교 하나로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 신라에서는 불교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동시에 유학과 교육도 함께 발달했습니다.
9. 발해, 고구려 문화를 이어받다
이제 북쪽의 발해로 가 보겠습니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뒤 대조영이 세운 나라입니다.
발해 사람들의 문화에서는 고구려 문화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정혜공주 묘입니다.
정혜공주 묘는 돌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만든 모습 등에서 고구려 고분과 비슷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발해의 온돌 시설이나 여러 유적에서도 고구려 문화와 이어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해 문화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계승했다.”
입니다.

10. 발해 문화는 ‘융합의 문화’였어요
하지만 발해가 고구려 문화만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아닙니다.
발해는 중국의 당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발해의 환경과 전통에 맞게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경 용천부에는 궁궐과 관청, 도로가 계획적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도의 모습에서는 당의 수도였던 장안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발해의 정효공주 묘에는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벽화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과 생활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발해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발해의 문화에서는 고구려의 전통과 당을 비롯한 주변 문화가 함께 나타납니다.
그래서 발해 문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여러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킨 융합적인 문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통일 신라와 발해 문화 한눈에 보기
| 구분 | 통일 신라 | 발해 |
|---|---|---|
| 문화 특징 | 불교문화가 크게 발전 |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고 주변 문화를 받아들임 |
| 불교·예술 |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성덕대왕신종 | 석등, 불상, 사찰 등 불교문화 발달 |
| 학문·교육 | 국학, 설총, 독서삼품과, 최치원 | 주변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문화를 발전시킴 |
| 대표 유적 | 불국사, 석굴암 | 정혜공주 묘, 정효공주 묘, 상경 용천부 |
| 핵심어 | 불교문화의 발달 | 고구려 계승 + 문화의 융합 |
12. 오늘의 초등 한국사 핵심 정리
통일 신라에서는 불교가 백성에게까지 널리 퍼지면서 불교문화와 예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원효와 의상 같은 승려들이 활약했고,
불국사와 석굴암, 다보탑과 석가탑,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뛰어난 문화유산도 만들어졌습니다.
또 신문왕이 국학을 정비하면서 유학과 교육도 발전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계승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는 데 그치지 않고 당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과 주변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문화재 이름을 하나씩 외우기보다 이렇게 연결해 기억해 보세요.
🐌 주미쌤의 역사 한마디
통일 신라와 발해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지만,
두 나라 모두 이전의 문화를 이어받아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통일 신라는 불교가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퍼지면서 불국사와 석굴암, 다보탑과 석가탑 같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발해 역시 고구려의 문화를 이어받으면서 주변 나라와 활발히 교류해 발해만의 융합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문화재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나 물건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것,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그리고 뛰어난 기술과 지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남쪽의 통일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문화를 꽃피웠던 남북국 시대.
두 나라가 남긴 문화유산을 통해 당시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통일 신라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 까닭과 후삼국 시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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