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 보았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제목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라는 문장도 여러 번 들어 봤다. 그래서 읽기 전에는 한 소년이 여러 어려움을 이겨 내고 성장하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읽어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종교와 선악에 대한 이야기부터 아브락사스 같은 낯선 개념까지 등장한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주인공 싱클레어였다.
싱클레어는 계속 흔들린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방황한다. 혼자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것 같으면서도 데미안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강한 영향을 받는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싱클레어는 왜 이렇게 변덕스러울까?’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그 변덕스러움이 《데미안》이 말하는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어린 싱클레어에게 세상은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부모님과 가족이 있는 밝고 안전한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거칠고 위험한 어두운 세계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밝은 세계에 속해 있다고 믿지만 크로머와의 사건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인다.
거짓말 하나로 시작된 일이 점점 커지고, 싱클레어는 혼자 해결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빠진다.
그때 등장하는 사람이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단순히 싱클레어를 위기에서 구해 주는 친구가 아니다. 싱클레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세상을 선과 악, 밝음과 어둠처럼 간단하게 둘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 간다.
🐣 새는 왜 알을 깨야 할까
《데미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와 알이다.
새가 세상으로 나오려면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야 한다.
처음에는 이 말을 ‘성장하려면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싱클레어의 삶을 따라가면서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알은 새를 가두고 있지만 동시에 보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알을 깬다는 것은 단순히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를 안전하게 지켜 주었던 세계에서 스스로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싱클레어에게 부모님의 세계가 바로 그런 알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계속 돌아가고 싶어 한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면서도 불안해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답답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도 비슷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으면서도 실패가 두렵고,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막상 변화를 앞두면 망설인다. 결심했다가 후회하고, 다시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싱클레어의 변덕스러움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 왜 싱클레어 주변에는 계속 다른 사람이 등장할까
싱클레어는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데미안에게 영향을 받고, 베아트리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도 한다. 이후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아브락사스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다시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만난다.
읽을 때는 이 부분도 조금 답답했다.
‘왜 싱클레어는 계속 다른 사람에게서 답을 찾을까?’
하지만 이것 역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혼자서 모든 것을 깨닫지는 않는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한 권의 책 때문에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따라 해 보다가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싱클레어도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배우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며 결국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간다.
특히 피스토리우스와의 관계가 그랬다. 처음에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생각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스승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진짜 성장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승에게 배운 뒤 그 생각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무엇이었을까
처음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자신과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처럼 보인다.
데미안은 자신감이 있고 다른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그에게 끌리고 그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데미안》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중요한 것은 데미안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싱클레어가 찾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데미안도, 피스토리우스도, 에바 부인도 싱클레어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그들은 싱클레어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이었다.
결국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싱클레어 자신이다.
✏️ 변덕스러운 싱클레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싱클레어가 참 많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가는가 싶으면 다시 방황하고, 혼자 설 것 같으면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모습이 변덕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 언제나 반듯한 직선일 수는 없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그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한동안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을 지나면서 조금씩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싱클레어의 흔들림과 변덕은 약함이라기보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처럼 보인다.
📖 《데미안》을 읽고
《데미안》은 한 번 읽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브락사스나 종교적인 부분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읽는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일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읽으며 한 가지는 마음에 남았다.
결국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선택해야 한다.
처음에는 변덕스럽다고 생각했던 싱클레어가 마지막에는 오히려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흔들리며 살아간다.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고, 선택을 후회해 다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싱클레어가 수없이 흔들리면서 결국 자신에게로 향했듯이, 우리 역시 각자의 알을 깨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중인지 모른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성장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를 찾아가는 것.
《데미안》을 완독하고 내가 생각하게 된 성장은 그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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