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시작은 정말 단순했다. 소
년 코지모가 누나 바티스타가 만든 달팽이 요리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반항처럼 보였다.
‘설마 정말 계속 나무 위에서 살겠어?’
그런데 코지모는 내려오지 않았다. 하루도 아니고 몇 달도 아니었다. 그는 평생 나무 위에서 살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제 달팽이 요리 한 접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날의 선택은 코지모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무 위의 삶은 저항이었을까
처음 코지모가 나무 위로 올라간 행동에는 분명 저항의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의 권위, 귀족 집안의 규칙, 정해진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단순한 반항을 넘어 코지모의 삶 자체가 된다.
그는 나무 위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사냥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사회 문제에도 참여한다. 땅을 떠났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그래서 코지모의 자유는 세상을 피해 도망치는 자유와는 조금 다르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 타협해도 되지 않을까?’
끝까지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 멋있다가도 너무 고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선택을 지키는 것과 절대로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은 과연 같은 것일까.
코지모를 응원하다가도 답답했고, 멋있다고 생각하다가도 고개를 젓게 되었다. 오히려 그래서 코지모라는 인물이 더 사람답게 느껴졌다.
🌳 코지모를 가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인물 중 한 명은 코지모의 어머니였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조금 덤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는 코지모가 언젠가는 내려올 거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코지모에게 나무에서 내려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 위에 있는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했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네가 내려오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돼.’
이런 마음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죽는 장면이 그래서 더 슬펐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지모의 선택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르다. 코지모의 어머니를 보며 나 역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게 되었다.
💚 비올라와 코지모, 사랑하지만 서로를 힘들게 한 관계
비올라와 다시 만난 이후의 이야기는 솔직히 조금 답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편안하지 않다.
비올라는 코지모를 강하게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질투한다. 자신은 자유롭게 살아왔으면서도 코지모에게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랑을 요구한다.
읽으면서 비올라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코지모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존심과 고집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고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둘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살게 하는 사랑보다는 점점 자신까지 망가뜨리는 사랑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비올라도, 코지모도 조금 싫어졌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사랑해도 상대의 자유와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결국 서로를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책으로 달라진 산적 잔 데이 브루기
잔 데이 브루기의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무서운 산적이었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에 빠지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고,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책을 통해 사람이 변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이 더 안타까웠다.
이제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그는 과거의 죄 때문에 사형을 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잘못을 없었던 일처럼 생각할 수도 없다.
지금의 달라진 잔 데이 브루기도 그 사람이고, 과거에 죄를 저지른 잔 데이 브루기도 결국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단순히 불쌍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변하려는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람이 변했다고 해서 과거의 책임까지 사라질 수 있는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남았다.
🕊️ 개인의 자유에서 사회의 자유로
코지모의 관심은 점점 자신의 삶을 넘어 사회로 넓어진다.
그는 프리메이슨과 관계를 맺고 사람들의 불평과 바람을 모으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대의 변화에도 관심을 갖는다. 나중에는 나무 위에 세울 이상 국가의 헌법 개요까지 생각한다.
처음 달팽이 요리를 거부했던 개인적인 저항이 어느새 사람들이 어떻게 자유롭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커진 것이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 부분은 더욱 복잡해진다.
처음 혁명은 자유와 평등, 더 나은 삶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은 다시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전쟁이 이어진다.
특히 러시아에서 후퇴한 프랑스군 잔병들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그들은 거대한 역사 속 영웅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치고 배고프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전쟁 속에서 죽는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바라며 새로운 지도자와 새로운 세상을 선택했지만, 그 권력이 다시 개인을 희생시키는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위한 권력이 결국 사람을 희생시키기 시작한다면 처음의 이상은 어디에 남아 있는 것일까.
코지모가 어떤 권력에도 완전히 자신을 맡기지 않았던 이유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 달팽이 요리에서 전설의 인물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코지모는 늙는다.
책 초반의 장난스럽고 반항적이던 소년은 사라지고, 아버지도 늙고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난다.
특히 아버지가 늙어 가는 모습은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처음에는 코지모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도 결국 아들의 삶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런데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 책은 이렇게 계속 시간을 보여준다.
아이였던 사람은 어른이 되고, 부모는 늙고, 사랑했던 사람은 떠나고, 세상도 달라진다.
그런데도 코지모는 나무 위에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코지모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코지모는 늙고 몸이 약해졌지만 끝내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을 지나던 기구의 닻줄을 붙잡고 사라진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한때 사랑했던 비올라에게 갔을까. 먼저 떠난 가족들에게 갔을까.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꼭 누군가에게 갔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코지모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갔다.
땅으로 내려오는 대신 더 높은 곳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는 그의 삶을 외롭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코지모는 평생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랑했고 공부했고 세상의 일에 참여했다. 자신이 나무 위에 올라온 것을 후회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끝까지 살아낸 사람이었다.
🍃 『나무 위의 남작』을 덮으며
처음에는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무 위에서 평생 산다고?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나무가 더 이상 특별한 장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은 코지모가 선택한 자신의 삶이었다.
코지모가 언제나 멋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집스러웠고, 답답했고, 사랑 앞에서는 자기 파괴적인 모습도 보였다. 나도 읽으면서 여러 번 “이제는 조금 타협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한 가지는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달팽이 요리 한 접시를 거부했던 열두 살 소년은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에 남는 존재가 되었다.
달팽이 요리에서 시작해 전설이 된 사람.
나는 앞으로 코지모를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나무 위의 남작』은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선택과 고집의 경계는 어디인지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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