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칵테일, 러브, 좀비』를 보았을 때는 책이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다. 이렇게 얇은 책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분량과 여운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이야기 네 편을 읽었을 뿐인데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여럿 남았다.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에는 「초대」, 「습지의 사랑」, 「칵테일, 러브, 좀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가 실려 있다.
귀신과 좀비, 시간을 되돌리는 일처럼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존재들이 아니라 인물들이 살아온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구속하는 관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지나치는 상처가 오히려 더 익숙하고 불편했다.
📖 「초대」|목에 걸린 가시는 무엇이었을까
채원은 어린 시절부터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남자친구 정현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편안하게 드러내기보다 상대의 기분과 평가에 맞추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태주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낯선 방향으로 흘러간다.
읽으며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하고 삼킨 말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한 순간, 상처받았지만 웃어넘긴 순간, 상대가 나를 무시해도 내가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말이다.
소설 속 가시를 그런 감정의 흔적으로 읽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이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남을 수 있다.
🌿 「습지의 사랑」|귀신들의 이야기가 더 다정했던 이유
물귀신 '물'과 숲귀신 '숲'이 서로를 알아보고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귀신이 등장하니 당연히 오싹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는 오히려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를 기다리고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 사이에서도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꼭 모든 것을 알아야만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서로 다른 곳에 머물던 두 존재가 상대의 외로움을 알아봐 주는 모습이 좋았다. 네 편 가운데 비교적 따뜻하게 느껴진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서운 존재라고 여겼던 귀신들보다,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모른 척하는 현실이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 「칵테일, 러브, 좀비」|아빠가 좀비가 되어서야 달라진 가족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역시 표제작 「칵테일, 러브, 좀비」였다.
어느 날 아빠가 좀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와 딸 주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이 설정만 보면 조금 황당하고 우스운 좀비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읽다 보면 가족 안에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빠는 좀비가 되기 전부터 고집불통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엄마와 딸은 그런 아빠를 마냥 미워하지도, 그렇다고 편안하게 사랑하지도 못한다.
바로 그 점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받은 상처도 분명히 있다. 정이 남아 있다고 해서 불편했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는 '가장'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가족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이유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모두 이해받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의 희생이나 참는 마음 위에서 유지되는 가족이라면, 그것을 화목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작가가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좀비가 된 아빠보다 가족에게 함부로 했던 평범한 아빠의 모습이 더 불편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단순히 나쁜 아빠를 없애는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는 않다.
주연의 마음에는 애정과 원망이 함께 남아 있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을 수 있다는 것.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단편을 오래 생각하게 했다.
⏳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과거로 돌아간다면 달라질까
마지막 이야기는 시간을 되돌릴 기회에서 시작된다.
끔찍한 일을 겪은 인물들은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그런데 그 선택들이 얽히고 겹치면서 이야기는 예상보다 복잡해진다.
처음에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단편을 읽다 보니 시간을 돌리는 것과 상처의 원인을 없애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후회할 일이 생기면 그때 다른 말을 했더라면, 다른 길을 갔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의 선택을 바꾸더라도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이 이야기는 그 불확실함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네 편 가운데 가장 복잡해서 앞의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작품이었다.
📚 짧은 이야기 네 편이 남긴 생각
이 책의 결말이 모두 뜻밖의 반전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어떤 이야기는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어떤 이야기는 분명하게 매듭짓기보다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그것이 아쉽지만은 않았다. 사건의 결과보다 그 일을 겪은 인물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 편을 하나로 묶어 보면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를 아프게 할 수도 있고, 남들이 무섭게 보는 존재가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다정할 수도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안전한 관계인 것은 아니며,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만으로 모든 상처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2024년에 처음 읽고 남긴 짧은 감상에도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적어 두었다.
다시 그 문장을 보니 지금도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좀비의 모습이 아니라 엄마와 딸이 느꼈을 복잡한 마음이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권할 책은 아니다. 짧은 소설을 읽고도 오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처음에는 책이 너무 얇다고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그 작은 책 안에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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