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조금 이상했다.
"내가 왜 스토너를 불쌍하다고 생각했을까?"
읽는 동안에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했다.
왜 저렇게 참고 살까?
왜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을까?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저러고 사는 걸까?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질문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스토너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스토너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 하나 때문에 『스토너』는 내게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관한 소설로 남았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
윌리엄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우연히 문학을 만나면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결국 농부가 되는 대신 대학에 남아 문학을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다.
이것만 보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멋진 인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대학에서도 갈등을 겪는다.
사랑을 만나지만 그 사랑 역시 끝까지 지킬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스토너의 인생에는 '이루지 못한 것'이 참 많다.
그래서 나는 읽는 내내 그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토너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놓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문학이었다.
💭 이디스는 왜 스토너와 결혼했을까?
『스토너』를 읽으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은 단연 이디스였다.
처음에는 그녀를 이해해 보려고 했다.
결혼 전 이디스가 스토너의 어린 시절과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스토너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인지, 사랑을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했던 것인지 계속 생각했다.
이디스 역시 감정적으로 충분한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성장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혼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결혼이라는 선택에 떠밀려 간 것일까?
여기까지는 이해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났다.
결혼을 선택한 사람은 이디스 자신인데 정작 결혼생활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스토너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잘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불행과 상처가 있다고 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계속 상처를 주어도 되는 것일까?
상처받았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권리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끝까지 이디스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등장인물을 이해하고 용서해야만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니니까.
다만 한 가지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정말 '무조건적인 악인'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디스의 행동은 미웠지만 그녀의 삶 전체를 '나쁜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 모든 관계에는 결국 인내가 필요한 걸까?
스토너와 이디스의 관계를 보면서 나는 '인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관계에는 어느 정도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도, 부부도, 친구도 결국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난다.
나와 완벽하게 같은 사람은 없으니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토너를 보면서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어디까지 인내해야 할까?
참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일이 될 때도 있지만, 지나친 인내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스토너의 인내는 사랑이었을까. 책임감이었을까. 아니면 체념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정확한 답을 모르겠다.
오히려 그래서 『스토너』가 좋았다.
좋은 소설은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이런 질문을 오래 남기는 것 같다.
❤️ 스토너와 캐서린, 사랑은 결국 대화일까?
이디스와의 관계가 답답했던 만큼 캐서린과 스토너의 관계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그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사랑은 단순히 같은 공간에서 오래 살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서로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와 세상을 함께 이해해 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랑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이디스와 스토너는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했고,
캐서린과 스토너가 함께한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서로의 내면에는 훨씬 가까이 다가갔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면, 그 관계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대화가 아닐까.
📖 『스토너』 결말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책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스토너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아니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인생을 볼 때 나도 모르게 기준을 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하고, 사
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딘가 부족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 기준으로 보면 스토너의 인생은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었다.
스토너에게는 문학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문학에 자신의 삶을 걸었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한 것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자격으로 그의 인생을 불쌍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타인의 행복은 내가 정해 줄 수 없다
『스토너』를 읽고 압축한 단어는 타인의 삶 · 평범 · 선택 이다.
스토너의 삶은 겉으로 보면 평범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인생 역시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농부의 삶 대신 문학을 선택했고,
교수가 되었으며, 결혼했고, 사랑했고, 때로는 싸웠고 때로는 포기했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창한 사건 몇 개가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수많은 선택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래서 책을 덮고 이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행복은 내가 정해 줄 수 없다.
내 눈에는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불행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 좋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나는 좋은 소설을 읽는 일을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토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디스와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까.
캐서린을 떠나보낼 수 있었을까.
로맥스와 끝까지 맞섰을까.
현실에서는 한 번의 인생밖에 살 수 없지만 소설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판단하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때 소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스토너』가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 『스토너』를 덮으며
스토너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읽는 내내 불쌍했고, 속상했고, 때로는 답답했다.
"잘할 수 있었는데 왜 저렇게 살까?"
그런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오히려 내가 스토너에게 질문을 받은 기분이었다.
"당신은 왜 내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불쌍하다고 판단했던 삶은 결국 내가 바라본 스토너의 삶일 뿐이다.
그 삶을 살아간 사람은 스토너였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평범한 삶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삶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타인의 행복 역시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스토너』를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스토너의 인생이 아니라,
어쩌면 타인의 삶을 바라보던 나 자신의 시선이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삶을 내 기준으로 너무 쉽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은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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