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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으로 생각을 키우는 독서와 글쓰기
주미의 독서

나는 여재화가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_《혼모노》_「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 해석,줄거리 ④_성해나

by 책읽는국어쌤🤗 2026. 8. 2.

30년을 바쳤는데, 신은 떠났다_《혼모노》_「혼모노」 해석,줄거리 ③_성해나

 

30년을 바쳤는데, 신은 떠났다_《혼모노》_「혼모노」 해석,줄거리 ③_성해나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_《혼모노》_「스무드」 해석,줄거리②_성해나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_《혼모노》_「스무드」 해석,줄거리②_성해나왜 하필 호랑이였을까? 속 기묘

jumibook.com

 

성해나 소설 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 해석 줄거리

 

 

『혼모노』를 읽으며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작품은 「구의 집」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건축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읽을수록 국가폭력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은 것은 건물이 아니라 건축가 여재화와 그의 제자 구보승이었다.

 

이 작품은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누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작품의 정답을 설명하는 해설이 아니라, 내가 읽은 「구의 집」이다.

 


성해나 소설 구의집 해설 줄거리 남영동 대공분

 

▌ 남영동 대공분실이 떠오르는 이유

 

 

  「구의 집」 많은 독자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는 작품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가와 시민들을 불법으로 조사하고 고문하던 공간으로,

오늘날에는 국가폭력의 상징처럼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성해나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그 건물을 설계했을까.

 

이 질문에서 「구의 집」은 시작된다.

 


▌ 줄거리

 

유명 건축가 여재화는 국가로부터 취조시설 설계를 의뢰받는다.

 

그는 그 공간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계는 멈추지 않는다.

 

여재화는 자신의 제자 구보승을 선택한다.

 

구보승은 측량기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성실한 청년이다.

아버지가 싸 준 도시락을 먹으며 건축을 배웠고, 좋은 건축가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취조실에 창문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민이 깊어질수록 생각은 달라진다.

잠시 희망을 보여 주었다가 다시 빼앗는 것이 사람을 더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희망조차 고문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여재화는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 이후에도 설계는 계속된다.

 

결국 건물은 완성되고, 수십 년이 흐른 뒤 늙은 구보승은 다시 그 건물을 찾아간다.

 


나는 여재화가 가장 무서웠다.

 

많은 독자들은 구보승을 보며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여재화가 더 무서웠다.

 

그는 제자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다.

구보승의 상상력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무너뜨리는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왜 그것이 잘못인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맡아야 할 설계를 제자의 손으로 완성하게 만든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재화는 기술은 가르쳤지만, 윤리는 가르치지 않았다.

 

건축 기술은 훌륭하게 전해 주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어디까지 사용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구보승은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한다고 믿으면서도, 사람을 무너뜨리는 공간을 설계하게 된다.

 


여재화도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이다.

 

늙은 구보승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정초석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건물을 '구의 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작가는 마지막에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 준다.

 

'구의 집'이라는 이름은 여재화가 붙였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다시 여재화를 떠올렸다.

 

그는 정말 이 건물과 거리를 둔 사람이었을까.

정말 반대했던 사람이라면 설계를 거절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는 설계를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손으로 건물의 이름까지 남겼다.

 

그래서 나는 여재화 역시 이 건물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구보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설은 마지막까지 구보승의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건물의 구조를 아직도 모두 기억한다.

나선형 계단과 여덟 개의 문, 정오에 창으로 들어오는 빛까지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나는 처음에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구보승은 마지막까지도 여재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 말의 의미를 평생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마지막에 그는 '구의 집'의 '구'가 공포를 뜻하는 '懼'인지,

자신의 성인 '구'인지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건축이 무엇이었는지 끝내 확신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구의 집』을 읽으며 AI가 떠올랐다.

 

책을 덮고 문득 AI가 생각났다.

 

AI는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지 못한다.

사람이 만든 기준 안에서 움직일 뿐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윤리다.

 

그래서 「구의 집」은 과거 남영동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라,

오늘날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내가 읽은 「구의 집」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내 해석이다.

 

누군가는 구보승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인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재화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훌륭한 스승이었다.

 

하지만 기술을 전하면서 그 기술이 사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윤리까지는 끝내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구의 집』은 건축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기술과 윤리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질문만 남아 있다.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보다, 우리는 그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