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명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 읽고 나면 오래 마음에 남는 소설 ❞
처음에는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쓴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집을 짓고 음식을 구하고 자연과 싸우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 소설은 단순한 생존기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문명은 우리를 정말 자유롭게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도라는 공간도 단순한 배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가진 생각과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 같았다.
📖 줄거리
난파로 무인도 스페란차에 홀로 남은 로빈슨은 살아남기 위해 섬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집을 짓고,
규칙을 만들고,
시간을 기록하며
섬을 자신의 질서 안에 두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섬이지만 그는 문명인의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표를 만들고,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자연에도 이름과 규칙을 부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원주민 방드르디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로빈슨이 방드르디를 가르치는 입장이었다. 자신의 언어와 생활방식을 알려 주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문명인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변하는 사람은 로빈슨이었다.
질서보다 자유를, 소유보다 놀이를 선택하는 방드르디를 보며 로빈슨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 방드르디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방드르디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자유’였다.
그는 무엇인가를 꼭 가지려고 애쓰지 않았고, 자연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죽었을 때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곧 내가 그를 공중에 날려서 노래 부르도록 만들어 줄 거야.”
처음에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읽을수록 방드르디는 죽음조차 하나의 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것을 붙잡기보다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방드르디가 부럽기도 했다.
나에게는 무엇인가를 잃거나 계획이 어긋나는 일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자유롭게 보였고, 동시에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 로빈슨 크루소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로빈슨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질서’였다.
그는 무인도에서도 문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집을 짓고, 규칙을 만들고, 시간을 기록하고, 모든 것을 계획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로빈슨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무인도에 혼자 있는데도 왜 저렇게까지 규칙에 매달릴까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오히려 로빈슨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마 불안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불안할수록 더 많은 것을 통제하려 했던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로빈슨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규칙을 만들고, 수업의 흐름을 정하고,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따라오기를 바랐다. 그때는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그 모든 규칙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불안하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 문명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로빈슨에게 문명은 안전이었다.
시간을 정하고, 규칙을 만들고, 소유를 구분하면 세상이 예측 가능한 곳이 된다.
하지만 그런 질서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오히려 그 질서에 묶일 수도 있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계속 정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만든 규칙이 나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방드르디는 정반대였다.
그는 자연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명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정말 자유롭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기준과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안정적인 생활, 정해진 성공의 모습.
그 기준을 따라가느라 오히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생각할 시간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 가장 오래 남은 생각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상할 정도로 로빈슨에게 마음이 갔다.
방드르디는 자유로워 보여 부러웠지만, 나는 오히려 변화 앞에서 불안해하는 로빈슨이 더 이해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불안할수록 아이들을 내가 만든 규율 안에서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믿었지만, 어쩌면 내 불안을 덜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로빈슨을 이해했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책을 덮으며
끝까지 읽고 나니 마음이 많이 슬펐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꾸었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선택한다.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바꾸었지만, 끝까지 함께 갈 수는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정해진 질서 안에서 움직이려는 로빈슨처럼 살고 있는지, 아니면 변화와 우연을 받아들이는 방드르디처럼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 나는 여전히 로빈슨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계획이 어긋나면 불안하고, 내가 만든 기준 안에서 일이 흘러가야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질서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세운 규칙을 조금 내려놓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정답을 알려주는 소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질문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문명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그리고 나는 안전한 질서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인가, 조금 불안하더라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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